이 글은 마지막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안 됐을 때 적었다. 사다리의 비유가 그때는 선명했다. 지금도 선명하다 — 다만 이제는 사다리가 아닌 곳에서 오래 살아봤기 때문에, 비유 대신 경험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퇴사 서류를 내고 사무실을 나왔을 때 — 해방감이 올 줄 알았다. 오지 않았다. 대신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 느낌. 사다리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사다리 자체가 사라진 느낌.
그때 알았다. 나는 사다리를 싫어했지만 — 사다리 없이 서는 법은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커리어란 사다리다. 인턴 → 사원 → 대리 → 과장 → 차장 → 부장. 올라가는 것이 방향이고, 속도가 성과이고, 꼭대기가 목표다. 이 구조 안에서는 — "나는 사다리를 타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는 의욕이 없다"와 동의어가 된다.
「자퇴 — 내가 연세대를 떠난 이유」에서 적었듯이, 나는 세상이 정해준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자퇴가 학교 사다리를 버린 것이었다면, 퇴사는 직장 사다리를 버린 것이었다. 두 번째는 더 무서웠다. 학교를 떠나면 '아직 젊으니까'라는 변명이 있었다. 직장을 떠나면 — 변명이 없었다.
사다리를 버리면 뭐가 남는가?
처음에는 —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었다. 할 일 목록을 만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오후 2시에 카페에 앉아있으면 — 이게 자유인지 실업인지 구분이 안 됐다.
명함이 없어지자, 나를 소개하는 게 어려워졌다. "뭐 하세요?"에 대한 답이 없었다. "이것저것요"라고 말하면 — 상대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 동정. 또는 불편함.
6개월이 지나서야 — 사다리가 아닌 다른 형태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게 아니라 넓어지는 방향. 위가 아니라 옆으로, 아래로, 때로는 뒤로 가는 방향.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접었다. 프리랜서 일을 했다 안 했다. 글을 썼다 지웠다.
「투자 없이, 팀 없이, 혼자 만든다는 것」에서 적었듯이, 나는 실패한 프로젝트들의 축적 위에서 만드는 법을 배웠다. 커리어 사다리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 한 칸 떨어지면 '퇴보'다. 사다리 없는 곳에서는 — 실패가 그냥 데이터였다. 안 되는 건 접고, 되는 걸 더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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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직함이 없다. CEO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1인 기업의 CEO는 사실상 '혼자 다 하는 사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명함도 없다. 자기소개는 — "호텔 브랜드랑 AI 도구를 혼자 만들어요"로 한다. 깔끔하지는 않지만, 정직하다.
한국에서 사다리를 타고 있었다면 — 지금쯤 과장이나 차장이었을 것이다. 연봉은 지금보다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퇴직금도 있었을 것이다. 건강보험도 회사가 내줬을 것이다.
대신 —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뭘 만들지 내가 결정한다. 그 결정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매일의 일이다. 사다리보다 무거운 날이 있고, 사다리보다 가벼운 날이 있다.
나는 지금, 사다리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다. 그 곳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당신은 지금 사다리 위에 있나요? 올라가고 있나요, 매달려 있나요, 아니면 내려올 궁리를 하고 있나요?
Thread: The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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