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텐츠 경고: 이 글은 가족 관계의 트라우마와 심리적 자율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합니다. '죽인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이 글은 책 원고의 일부를 에세이로 재구성한 것이다. 처음 적었을 때는 분노였다. 두 번째 적었을 때는 슬픔이었다. 세 번째에서야 — 이해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이해가 용서는 아니다. 하지만 이해는 — 자유의 시작이었다.


가슴이 닫힌다. 엄마에 대해 쓰려고 하면 — 매번 그렇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첫 문장을 치기 전에 — 가슴 한가운데가 단단하게 잠긴다. 몸이 거부한다. 아직도.

그래도 쓴다.


엄마를 죽인다는 건 — 엄마를 물리적으로 해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사는 엄마를 죽이는 것이다. 내 모든 결정에 개입하는 목소리. 내가 뭘 하든 "그게 맞아?"라고 묻는 목소리. 내가 성공하면 "그래도 결혼은?"이라고 하고, 실패하면 "내가 뭐랬어"라고 하는 목소리. 내 머릿속에 세입자처럼 살고 있는 엄마.

그 엄마를 죽이는 것이다.

이건 한국의 딸이라면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 대부분 아는 감각이다. 우리 엄마들은 사랑으로 우리를 삼킨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경계를 무너뜨린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율성을 빼앗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 저항하면 불효가 되고, 분노하면 배은망덕이 된다.


어릴 때의 기억이 있다. 현재형으로 쓰겠다. 규칙이니까.

초등학교. 시험 결과를 가지고 집에 온다. 100점이 아니다. 엄마의 표정이 변한다. 말은 하지 않는다. 말보다 무서운 것은 — 침묵이다. 실망의 침묵. 그 침묵이 내 몸에 새겨진다. 가슴이 조여온다. 숨이 얕아진다. 나는 틀렸다, 고 몸이 기록한다.

이 기록은 — 30살이 되어도 재생된다. 상사에게 지적을 받을 때.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누군가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몸이 자동으로 재생한다. 가슴이 조여오고, 숨이 얕아지고, 나는 틀렸다, 고.


「자퇴 — 내가 연세대를 떠난 이유」에서 적었지만 — 자퇴는 학교를 떠난 것이 아니라, 엄마의 기대를 떠난 것이었다. SKY를 나온다는 건 — 엄마가 나에 대해 가진 모든 계획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결혼, 직장, 사회적 지위 — 모든 것의 첫 번째 전제인 '좋은 대학 졸업'을 포기하는 것.

엄마에게 자퇴를 말했을 때 — 엄마는 울었다. 나도 울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운 게 아니었다. 엄마는 자기의 딸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울었다. 나는 — 드디어 내가 되기 시작하는 것에 대해 울었다.


엄마를 죽이는 과정은 — 잔인하다. 왜냐하면 진짜 엄마가 아니라 내 안의 엄마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엄마는 여전히 한국에 있다. 여전히 전화한다. 여전히 걱정한다. 여전히 사랑한다. 그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이 내 자율성을 먹어치우는 것을 —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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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에서 이것을 'enmeshment'라고 부른다. 경계가 없는 관계. 엄마의 감정이 나의 감정이 되고, 엄마의 꿈이 나의 꿈이 되고, 엄마의 실패가 나의 실패가 되는 구조. 이 구조 안에서는 —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의 연장일 뿐이다.

이 구조를 부수는 것이 — 엄마를 죽이는 것이다.


「마크 로스코가 내 목숨을 구한 날」에서 적었듯이, 나는 살지 말지를 결정하고 있었다. 그 결정의 뿌리에 — 이 구조가 있었다. 내 안의 엄마가 너무 커서 — '나'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건 — 내 이유가 아니라 엄마의 이유만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죽이고 나서 — 라고 쓰고 싶지만, 죽이는 것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다. 매일이다. 매일 아침 내가 결정하는 것이 엄마의 목소리인지 나의 목소리인지 — 구분하는 연습. 그 연습을 수백 번 하고 나서야 — '나'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한국의 딸들에게.

당신의 엄마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사랑이어서다. 사랑이 경계를 넘을 때 — 그 사랑은 감옥이 된다. 감옥을 부수는 것은 사랑을 부수는 것이 아니다. 문을 여는 것이다.


당신 안에 — 누구의 목소리가 살고 있나요? 그 목소리는 당신의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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