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베를린에 온 지 2년쯤 됐을 때 적었다. 정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지금은 7년 차다. 여전히 확신은 없다. 다만 — 여기가 내 주소라는 건 인정하게 되었다.
발이 멈췄다. 크로이츠베르크의 어느 골목에서. 가을이었고, 낙엽이 젖은 보도 위에 깔려 있었고, 카페에서 커피 냄새가 흘러나왔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 — 몸이 멈췄다. 여기 있어도 돼, 라고 몸이 말하는 것 같았다.
30개국을 돌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머무르라는 신호.
베를린에 온 건 계획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에서 비자 문제가 생겼고, 독일이 프리랜서 비자를 주는 몇 안 되는 유럽 국가 중 하나였고, 항공편이 쌌다. 그게 이유의 전부다. 운명적인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대부분의 인생은 항공편 가격으로 결정된다.
처음 6개월은 힘들었다. 독일어를 못 했다. 아는 사람이 없었다. 베를린의 겨울은 오후 3시에 해가 지고, 11월부터 3월까지 하늘이 회색이다. 한국에서 온 사람에게 — 이 어둠은 낯설었다. 물리적으로 어둡고, 사회적으로도 어두웠다. 독일인들은 친절하지만 가깝지 않다. 3년을 알아도 성을 부르는 사이인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거리가 — 나를 살렸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기술」에서 적었듯이, 나는 소유를 줄이면서 자유를 배웠다. 베를린은 관계의 미니멀리즘을 가르쳐줬다. 아무도 내 사생활에 관심이 없었다. 뭘 하든, 어떻게 살든, 네 인생이니까.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관심이었고 — 처음에는 외로웠지만, 점점 그 무관심 안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정착은 순간이 아니라 축적이었다.
좋아하는 카페가 생겼다. 바리스타가 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슈퍼마켓에서 어떤 빵이 맛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웃집 고양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우체국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 어느 날 깨닫는다. 아, 여기가 집이구나.
집이란 —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것들의 합이었다. 30개국을 돌면서 찾으려 했던 '집'은 — 한 곳에 머물러야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아이러니.
베를린에서 치유가 시작되었다. 「17년 만에 돌아온 도시」에서 쓰겠지만 — 이 도시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처음 와본 곳이 아니었다. 17년 전에 왔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함'이 치유의 시작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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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정착한다는 것은 — 한국을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나를 버리는 것이었다. 졸업장, 직함, 나이에 맞는 행동, 결혼 시기, 적정 연봉 — 한국이 나에게 기대했던 모든 것을 놓는 것이었다.
유럽은 그 기대가 없었다. 없다는 게 — 가끔은 허전하고, 대부분은 자유로웠다.
7년이 지났다. 이제 베를린은 내 도시다 —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완전히 맞는 곳은 아니다. 한국이 그리운 날이 있고, 김치찌개가 필요한 밤이 있고, 한국어로 욕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숨을 쉴 수 있는 곳. 나로서 살 수 있는 곳. 그걸 집이라 부르기로 했다.
당신에게 '집'은 어디인가요? 찾았나요, 만들었나요, 아니면 아직 찾는 중인가요?
Thread: The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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