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9년 여름, 서울의 원룸에서 짐을 버리기 시작할 때 썼다. 지금도 거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 철학이 되었다. 달라진 건 — 이제는 선택이라는 것.
손끝이 먼저 안다. 물건을 집어서 쓰레기봉투에 넣는 순간, 손가락이 잠깐 멈추는 게 느껴진다. 이걸 버리면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지고, 조금 더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된다. 그 감각이 — 무섭고, 동시에 시원하다.
자신 있게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까닭은, 발리를 여행할 당시 작은 백팩 하나에 의존하여 한 달을 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의 내 삶이 가장 이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물건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삶. 물리적 위치에 구속당하지 않는 삶.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라고는 그저 명상과 요가뿐이었던 그때의 삶은 — 가장 행복했었다.
한 달 동안 들고 다닌 건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행복은 당장 눈앞의 것에만 집중할 수 있을 때 일어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고민들. 관리비와 월세. 직장 상사와의 카톡은 어찌 대답할지. 아침부터 머릿속이 해야 할 일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 당신은 아마 그 고민의 양만큼 행복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것이다.
발리에서 내가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쓰던 폰도 버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카카오톡, 이메일, SNS가 없는 삶은 풍요롭기 이를 데 없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 전날 술을 마시다 폰을 택시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공항 오는 길에 5만 원짜리 기계를 사서 인도네시아 유심을 꽂아버렸다. 모든 메시지는 오전 11시에 한 번 컴퓨터로만 확인했다.
실수로 시작된 미니멀리즘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한 달을 만들어줬다. 아이러니.
나쁜 습관도 모조리 버려버린다
왜인지 물건들을 버리고 나니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과거의 내 잔해를 솎아내어 버릴 자신이. 어쩌면 정말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삶에서 정말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온 나쁜 습관들이 많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기분 나는 대로 돈 쓰기. 기분 나는 대로 아무거나 먹기. 담배, 술 절제하지 않기. 기분 나는 대로 아무 때나 자고 일어나기. 기분 내킬 때에만 일하기. 청소하지 않기. 연락에 답장하지 않기.
얘기하다 보니 참 끔찍한데, 그렇다. 나는 때로 이런 인간이었다. 정신 차려 열심히 일하는 모범적인 나와, 시궁창 냄새 나는 오랜 본능을 따르는 동물적인 내가 한 몸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이 캐묵은 습관들은 모이고 모여 이내 현재의 내 몸과 마음을 만들었고 — 그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통장 잔고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나는 곧잘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까 고용불안에 시달릴 정도로 스스로도 예측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의 high achiever, 완벽주의는 어디 간지도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싫은 점이 많은데 고칠 노력은 안 하고 괜찮다고 자기 위로하는 패배자 마인드가 — 너무 싫었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듯이, 습관도 하나씩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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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을 고쳤다. 배달 음식을 끊고, 매주 거의 같은 것만 먹었다. 샐러드, 고기, 커피. 이따금씩 과일. 한 달이 지나자 몸이 눈에 띄게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했다. 평생 저질 체력으로 조금만 일하거나 공부해도 몇 시간은 퍼질러 자야 했던 인간이. 두 달이 되어가지만 체력이 정말 좋아진 게 피부로 느껴졌다.
일부 습관은 추적만 열심히 하지 잘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두 가지를 명확히 바꾼 것만 해도, 새로 태어난 것 마냥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씩 고치다 보면 아마 조금씩 더 나은 인간이 되지 않을까.
사실 이렇게 하나씩 고치면서 진짜 고쳐지고 있는 게 있었다 — 바로 '작심삼일 하는 습관'. 무언가 꾸준히 하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인간이, 하나를 지켜나가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면 — 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마 이 세상에 없게 될 것이다.
「자퇴 — 내가 연세대를 떠난 이유」에서 적었듯이 나는 세상이 정해준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자퇴가 사회적 소유를 버린 것이었다면, 미니멀리즘은 물리적 소유를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나쁜 습관을 버린 것은 — 과거의 나 자신을 버린 것이었다.
「투자 없이, 팀 없이, 혼자 만든다는 것」에서 쓰겠지만, 이 '버리는 기술'은 나중에 사업을 만들 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안 되는 프로젝트를 빠르게 접는 것. 필요 없는 기능을 과감히 빼는 것. 소유를 줄이면 본질이 보인다는 건 — 삶에서도, 제품에서도 똑같았다.
나는 이렇게 나를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매일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버려야 자유로워질 수 있나요? 그리고 그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아직 들고 있나요?
Thread: The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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