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0년,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으로 혼자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적었다. 그때 만든 것들은 전부 실패했다.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사이드 프로젝트들 중 하나가 — 지금 Soulin Social의 뼈대가 되었다. 타이밍만 틀렸던 것이었다.
목이 뻣뻣했다. 사무실 형광등 아래서 엑셀 시트를 보고 있는데, 눈이 아닌 목이 먼저 거부했다. 고개가 더 이상 화면 쪽으로 돌아가지 않는 감각. 몸이 말하고 있었다 — 여기가 아니라고.
퇴사는 극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 내리지 않았다.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쳤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그다음 역에서도, 그다음 역에서도. 종점까지 갔다. 종점에서 벤치에 앉아 30분을 가만히 있다가 — 사직서를 썼다. 폰 메모장에.
퇴사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 무슨 계획이 있었느냐고.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 계획은 있었는데, 아무도 그걸 계획이라고 인정해주지 않았다.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보겠다'는 말은 한국에서 계획이 아니라 미친 소리에 가깝다. 적어도 2020년에는 그랬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면서 봤다 — 세상에는 회사 없이도, 노트북 하나로, 어디서든 일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스라엘 개발자, 프랑스 컨설턴트, 브라질 디자이너. 이 사람들은 30대, 40대에도 이렇게 살고 있었다. 지속 가능했다. 그게 충격이었다.
발리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치앙마이의 카페에서 — 이런 사람들을 수십 명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건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다만 한국에서는 그 선택지가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첫 번째 사이드 프로젝트. 디지털 노마드 정보 강연.
3주 만에 만들었다. 노션과 타입폼으로. 코딩 없이. 결과: 유료 결제 30명, 총 매출 30만 원.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 편의점 알바보다 못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 커뮤니티 웹사이트. 노코드 툴로 석 달 걸려 만들었다. 직장 다니면서. 밤에 만들고 새벽에 테스트하고 아침에 출근했다. 회원가입 300명. 실제로 쓰는 사람 — 30명도 안 됐다. 3달 운영하고 접었다.
세 번째.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뭔가. 2주 만에 접었다.
네 번째. 한 달 만에 접었다.
「월 목표 수입, 그리고 현실」에서 적었듯이, 내가 꿈꿨던 숫자와 현실의 숫자는 — 심하게 달랐다. 월 1000만 원을 벌겠다고 적어놓고, 실제로 번 건 30만 원. 격차가 너무 커서 — 오히려 웃겼다. 절망할 여유도 없었다. 다음 걸 만들어야 했으니까.
사이드 프로젝트의 가장 잔인한 점은 — 성공보다 실패가 조용하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 실패해도 누군가가 알아차린다. 상사가 지적하고, 동료가 위로하고, 평가에 기록된다. 혼자 만들면 — 실패를 아무도 모른다. 서비스를 접어도, 가입자가 0명이어도, 세상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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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반응이 — 실패보다 더 아프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었다. 프로젝트가 하나씩 죽을 때마다, 다음 프로젝트의 속도가 빨라졌다. 뭘 먼저 만들어야 하는지, 뭘 버려야 하는지, 돈을 내는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 — 이런 것들이 머리가 아니라 손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5000만 원 들여서 마케팅했는데 매출 15만 원이라는 경험이 — 뼈에 새겨진 교훈이 되었다. 돈을 내는지만 봐라. 나머지는 전부 소음이다.
「투자 없이, 팀 없이, 혼자 만든다는 것」에서 더 자세히 적었지만 — 이 모든 실패의 잔해에서 결국 살아남은 것이 있다. 그게 지금의 프로젝트들이다. Soulin Social. KINS. 이 Substack.
퇴사는 시작이 아니었다. 퇴사는 — 허락이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들어도 된다는, 실패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뭔가가 남는다는 — 허락.
내가 만든 것 중 성공한 건 10%도 안 된다. 하지만 그 10%는 — 나머지 90%의 실패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영감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산수다.
왜 퇴사했느냐고 묻는다면 — 목이 아팠다. 그게 전부다. 몸이 먼저 알았고, 나는 몸을 따랐다. 그게 옳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 목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당신의 몸은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그 말을 듣고 있나요?
Thread: The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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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치유, 그리고 혼자 만드는 삶에 대해 씁니다. 여정을 위한 도구 → souli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