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200만 원과 우울증을 안고 집을 나왔다

2019년에 떠났다. 그날을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적는다. 그 사이에 30개국을 떠돌았고, 발리에 호텔을 짓고, 베를린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떠나던 날의 나는 이 문장들을 한 마디도 안 믿었을 것이다.


손이 차가웠다.

인천공항 환전소 앞이었다. 통장에 남은 마지막 잔고를 싱가포르 달러로 바꾸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 추워서가 아니라, 몸이 머리보다 먼저 알고 있어서.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걸.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걸.

스물다섯이었다. 통장에 마이너스 200만 원. 편도 티켓 한 장. 백팩 하나. 그게 전부였다.

대학을 자퇴한 다음 해였다. 12년을 공부해서 들어간 SKY를 — 36,500시간을 거기 바쳤는데 — 자퇴서 한 장으로 끝냈다. 가족한테는 "잠깐 쉬고 올게요"라고 거짓말했다. 나 자신한테도 거짓말했다. 잠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 5년

자퇴를 결정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 5년이 그 전 10년보다 더 무거웠다.

겉으로 나는 멀쩡했다. 학교 다녔고, 인턴 했고, 사업도 두 번 시작했다. 가족 식사에서 웃었다. 시험 점수도 잘 나왔다. 한국 사회의 모든 체크박스를 — 어쩌면 너무 잘 — 체크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 화장실에서 자주 토했다. 일요일 밤마다 가슴이 조여왔다. 새벽 3시에 깨서 천장을 봤다. 이게 정상이라고, 다 이렇게 산다고, 단지 압박이 좀 셀 뿐이라고 — 매일 스스로한테 설명했다.

다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아니면 다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게 더 나쁜 거다.

가장 위험한 종류의 우울이었다 — 출근하고, 시험 보고, 사람 만나고, 돈 버는 우울. 무너지지 않으니까 아무도 안 멈춰준다. 무너지지 않으니까 나도 멈출 수 없다.


떠나기 전날 밤

서울 아파트 바닥에 앉아 있었다. 매트리스도 반납했고, 보증금도 받았고, 5년 간의 먼지와 메아리만 남은 빈 방이었다.

절망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납작한 거였다 — 미래에 발을 디디고 싶다는 감각의 완전한 부재. 머릿속에 보이는 모든 길이 이미 가본 곳으로 갔고, 전부 싫었다.

그 빈 바닥에서 한 가지를 결정했다.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가기로. 어디든 상관없었다. 싱가포르 편도 티켓이 가장 쌌다. 싱가포르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싱가포르에 대한 감정이 딱히 없었다. 한국이 아닌 곳이면 됐다.

"한국이 아닌 곳" — 그게 그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지였다. 재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우울증은 같이 여행했다

이건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떠나서 나를 찾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거짓말이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다.

나는 떠났고, 우울증은 따라왔다. 서울에서 침대에서 못 일어나던 부분은 리스본에서도 침대에서 못 일어났다. 우울증은 경도(經度)를 신경 안 쓴다.

2년을 떠돌았다. 싱가포르, 발리, 베트남, 치앙마이, 리스본, 바르셀로나, 결국 베를린. 여행이 아니었다. 여행자에게는 일정과 버킷리스트와 인스타 그리드가 있다. 나는 그냥 떠돌았다. 가장 싼 비행기, 친구의 친구의 소파, 첫 주 무료인 코워킹 스페이스를 따라서.

바뀐 건 천천히였다. 나를 고치려는 노력을 멈췄다. 한국식 회복을 시도하다가 — 더 열심히, 더 빨리, 더 잘 — 안 되니까, 그냥 부서진 채로 있었다. 새벽 3시에 리스본을 걷는 것, 도착지 없는 산책. 그게 유일하게 척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 안척함 속에서, 내가 버린 모든 역할이 남긴 빈자리에서, 작은 게 하나 자라기 시작했다. 호기심이었다. 아무도 안 보고 있다면, 나는 뭘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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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회복했다

몇 년이 더 걸렸다.

15년 동안 안고 있던 것들 — C-PTSD, ADHD, PCOS, 불면증, 불안, 우울증 — 을 혼자 치유했다. 누가 만들어준 답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낸 답으로.

상담, 명상, 호흡법, 식물 의학, 바이오해킹, 기능 의학 — 존재하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대부분은 효과가 없었다. 일부는 정말 모든 걸 바꿨다. 효과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그 효과 있던 프로토콜들이 — 나중에 — 발리에서 KINS의 기반이 됐다. 장수와 바이오해킹을 다루는 웰니스 호텔 브랜드. 내 회복 데이터로 직접 만들었다. 코딩도 못 하고, 학위도 없고, 투자자도 팀도 없는 상태에서, KINS를 돌리는 모든 AI 시스템을 혼자 만들었다.

호텔만 만든 게 아니었다. AI 도구도 세 개 만들었다. Soulin Social, LifeOS, Sales Agent. 매일 쓴다. 매일 부순다. 매일 다시 만든다.


지금

베를린 책상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7년 전 인천공항 환전소 앞의 그 애는 — 이런 미래를 한 마디도 안 믿었을 것이다. 자기 사업을 하고, 호텔 브랜드를 만들고, 코딩 한 줄 모르면서 AI 도구를 만들고 있다고? 그 애한테 그건 다른 사람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다. 그 애가 빈 서울 아파트 바닥에서 한 결정 —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가기로 — 이 결정 하나가 모든 걸 시작했다.

가본 적 없는 곳은 싱가포르가 아니었다. 지도에 없는 곳이었다. 한국식 성공 방정식 바깥에. 다른 사람이 만든 시스템 바깥에. 누군가의 허락 바깥에.

그 결정 하나를 — 7년 동안 매일 다시 결정해야 했다. 매일 떠나고, 매일 부서지고, 매일 다시 시작했다. 그게 결국 만들어낸 것이 — 이 책상이고, 이 회사고, 이 글이다.


당신한테도 떠나야 하는 자리가 있을 수 있다. 그 결정을 미루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그 결정은, 그게 무엇이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것보다 무서울 거다.

그리고 그게 — 내가 한 가장 옳은 결정이었다.


자유, 치유, 그리고 혼자 만드는 삶에 대해 씁니다. 여정을 위한 도구 → souli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