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9년, 연세대를 떠나고 몇 달 뒤에 썼다. 무서웠고, 무섭지 않은 척했다.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호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고, AI 도구 세 개를 혼자 만들었다 — 그래도 자퇴가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래에 적힌 두려움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맞았다.
가슴 어딘가가 눌리는 느낌이었다. 자퇴서를 들고 행정실 앞에 섰을 때, 다리가 먼저 멈췄다. 머리는 이미 결정을 끝낸 뒤였는데, 몸은 아직 무서워하고 있었다.
10년. 하루 꼬박 10시간. 약 36,500시간.
내가 소위 말하는 SKY에 들어가기 위해 바친 시간.
5년. 나의 가치관이 완전히 변하는 데 걸린 시간. 학교에서 자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
나는 작년 여름, 나의 가치를 유일하게 증명해주던 학교에서 자퇴했다.
내 나름대로 대학이란 과정을 끝낸 것이다. 그게 비록 졸업식과는 거리가 먼 광경이었지만.
자퇴를 한 이유
내가 자퇴를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어서.
자퇴하기 전에 10명 정도, 내가 굉장히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물어봤었다. 학교 졸업장이 왜 필요하냐고.
다양한 답변이 있었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래도 학교 졸업장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들 잘 대답하지 못했다. 삼성에 가기 위해, 또는 나중에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승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대답에 — 저는 취업할 생각이 없는데요 — 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나면, 그저 당연히 필요하지 않나라는 당위성만 내세울 뿐, 누구도 뚜렷하게 내게 졸업장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 물론, 졸업장이 있으면 좋겠지. 그러나 우리가 4년 이상 약 3000만 원 — 나의 경우에는 이 이상이었다 — 그리고 대학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면, 왜 다니는지는 알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자퇴하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냥 돈 내고 학교 꼬박꼬박 출석만 하면 나오는 졸업장, 뭐가 어렵다고 자퇴까지 하나. 그저 회피하는 것은 아닌가?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어서는 아닐까?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학교를 그만두는 게 그냥 다니는 것보다 훨씬 힘든 결정이기 때문이다. 자퇴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아마 두 가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경우, 혹은 정말 확고한 신념이 있는 도라이.
나의 경우 약간의 둘 다인 경우였다.
뭐 돈이 없다거나, 공부를 정말 따라갈 수 없다거나 그런 이유라기보다는 — 나는 정말 더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을 하다가는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머릿속의 사고 회로가 폭발해 개복치처럼 자폭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수년간 왜 다녀야 하는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지식인지 모르고 닥치고 하던 순간들이 수없이 있었지만, 그건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라던지,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어떤 목적에 의해 정당화되고는 했었다.
그러나 나는 20살이 된 이후로 4번의 입사, 2번의 창업과 이런저런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깨닫게 되었다. 학교가 일에도 인생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국내 및 해외에서 창업 및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평범한 직장인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오랜만에 터널을 빠져나와 빛을 본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몇 번의 크리티컬한 순간들이 존재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 100억대를 번 창업가, 꽤나 성공한 변호사, 서울대병원 간부급 의사, 포츈 500대 기업 간부급, 유명한 VC, 싱가포르와 발리의 디지털 노마드들, 재벌, 탑 1% 은행원, 그리고 대기업 직장인이 된 선배들.
이 한국 사회의 뻔하디 뻔한 성공 방정식을 밟고 있던 정말 순응적인 모범생에서 극단적인 자퇴생이 되기까지, 어떻게 이렇게 가치관이 변화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간단히 줄이자면 이렇다.
나에게 있어 '성공'의 개념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한다는 것.
이전에 나는 성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우리나라에서 SKY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위 '생각'이라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얻게 된 것은 어마어마한 자유 시간이었다. 기존에 공부하던 10시간을 채우지 않아도 시간이 남고 돌았다. 생각할 시간이 생겼지만 처음에는 그다지 고민을 하지도 않았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성공'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뻔하게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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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0살의 SKY 대학생이자 여자로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길은 크게 세 가지 정도.
(1) 대기업 입사
(2) 전문직 전직
(3) 부잣집 취집
그리고 나는 왜인지 셋 다를 극혐했다. 와 닿지를 않았다. 이미 사실 주변에서 많이들 보고 듣지 않았나. 우리나라에서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을 보며 우린 많이 느끼지 않았나. 저게 답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않는 제4의 길로 가보기로 했다. 창업. 사실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하기로 하고 —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나는 새롭게 성공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삶이 무엇인가?
이것도 사실 바로 탁하고 답이 나오는 질문이 아니어서, 나는 내가 싫은 것부터 써나가기 시작했다.
(1) 나는 돈 쓸 시간도 없이 아끼며 아끼다 50대가 되어버린 후, 내 삶을 위로하기 위해 휴양 여행이나 다니고 싶지 않다.
(2) 직장에 매일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한 후 40대, 50대에 토사구팽 당하고 싶지 않다.
(3) 적당히 취집해서 누군가한테 의존하며 살고 싶지 않다.
(4) 매일 실험실에 혹은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는 원하는 것을 써 내려가 봤다.
(1)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2)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다.
(3) 젊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4) 내가 '나'여도 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
(5) 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공감하겠지만, 뻔한 이야기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내게 (외국인 친구들조차도) '정말 밀레니얼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그 이야기인즉슨, '이상적이나 현실적이지 못한 뻔한 소리를 하는군'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때가 많은데, 뭐, 한국 사회에서는 사실상 거의 맞는 얘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이 아니라면? 혹시 다르지 않을까? 혹시??
나는 결국 이 질문 하나를 들고 한국을 떠났다. 가방 하나와 마이너스 통장을 들고. 이후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기술」에 적었다. 소유를 줄이면 답이 보인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결국 「유럽에 정착한다는 것」에서 쓰겠지만 — 나는 한국 밖에서 그 '다른 방법'을 정말로 찾았다.
36,500시간을 바쳤던 곳을 떠나는 데에는 5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5년은 10년보다 더 무거웠다.
당신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에 얼마나 오래 버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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