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베를린에 처음 돌아온 날 적었다. '처음'이 아니다 — 17년 만에. 아이일 때 한 번 왔었다.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때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 그게 치유의 시작이었다.
발이 보도에 닿는다.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근처의 어떤 거리. 17년 전에 이 거리를 걸었다. 아이였다. 부모님과 함께였다. 기억은 — 흐릿하다. 색이 바랜 사진처럼. 건물은 기억나는데 감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17년 만에 돌아왔다. 혼자. 그리고 —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감동도 없었고, 향수도 없었고, 슬픔도 없었다. 17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야 할 법한 어떤 감정도 — 도착하지 않았다. 거리를 걸으면서 기다렸다. 뭔가 올라올 거라고. 아이일 때의 기억이 몸 어딘가에서 깨어날 거라고.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 해리에 가깝다.
C-PTSD를 오래 안고 산 사람은 안다. 감정이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무감각은 슬픔보다 무섭다. 슬프면 적어도 살아있다는 증거가 있다. 무감각하면 — 증거가 없다. 내가 존재하는지조차 모호해진다.
17년 전의 베를린과 지금의 베를린 사이에 — 15년의 아픔이 있었다. 우울증, 불면증, 불안, 몸이 기억하는 것들. 그 15년 동안 몸은 감정을 차단하는 법을 배웠다. 생존 전략이었다. 너무 많이 느끼면 무너지니까 —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베를린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건 — 그 차단이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유럽에 정착한다는 것」에서 적었듯이, 베를린은 우연히 내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17년 전에 한 번 왔던 도시로 다시 돌아온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몸은 기억한다. 머리가 잊어도 몸은 기억한다.
아이일 때 베를린에서 느꼈던 것 — 그때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어떤 감각 — 이 20년 뒤에 나를 다시 이 도시로 데려온 건 아닐까. 의식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몸은 '여기가 안전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치유는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베를린에 정착하고, 천천히,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것들. 커피의 온도. 바람의 방향. 비 오는 날의 냄새. 이런 감각들이 — 하나씩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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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 미술관에서 그림 앞에 서다가 무릎이 풀렸다. 「마크 로스코가 내 목숨을 구한 날」에서 쓰겠지만 — 그 순간이 감정이 돌아온 순간이었다. 차단이 풀린 순간. 17년 동안, 아니 더 오래 닫혀있던 문이 열린 순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그 날이 — 치유의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처음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자체를 느꼈기 때문이다. 무감각을 인식하는 것. 그게 첫 번째 균열이었다.
지금 베를린을 걸으면 — 느낀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밤공기가 차가워지는 것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다는 것을. 이 감각들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 당연한 게 아니었다. 오래 꺼져있다가 다시 켜진 것이었다.
17년 만에 돌아온 도시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날. 그 날이 없었다면 — 지금 이 모든 감각도 없었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있나요? 그 순간을 느끼고 있나요?
Thread: The 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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