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0년, 아직 회사를 다니면서 노마드인서울이라는 서비스를 혼자 만들 때 썼다. 지금 그 서비스는 없다. 그 뒤로 네 개의 프로젝트가 더 죽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지금 Soulin Social과 KINS를 만드는 뼈대가 되었다. 투자 없이 혼자 만드는 건 여전히 외롭다. 다만 이제는 그 외로움의 무게를 안다.
손이 먼저 기억한다. 키보드를 치기 전, 심장이 조금 빨라지는 그 순간. 뭔가를 처음부터 만들기 직전의 감각.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시작할 때의 떨림.
노마드인서울은 원래 웹사이트도, 서비스도 아닌 그냥 블로그였다.
0단계: 블로그
시작은 극심한 우울증이었다.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고, 하던 사업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희망을 가지고 취업했던 회사들에서는 좋은 소리 못 듣고 나오게 되었다. 한 마디로, 내 인생은 아주 제대로 바닥을 찍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행복하게 노마드로 살던 삶을 내팽개치고 한국에 왔는데 그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조차 내게 해외의 삶은 말도 안 되니, 꿈에서 깨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줬다. 현실에 정착하라고.
그 누구 하나 내 편이 없던 그때, 간절히 나를 이해해 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런 절박함에서 토해낸 글이 바로 첫 글이었다. 역설적으로 여태까지 가장 히트 친 글이 바로 「자퇴 — 내가 연세대를 떠난 이유」다.
그리고 그 글 하나가 내 인생을 바꾸는 첫 단추가 되었다. 편협한 내 주변 몇 사람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용기를 얻어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뗄 수 있었다.
1단계: 카톡방 커뮤니티
아무 생각도 없이 만들었던 단체 카톡방. 당시에는 온라인에 내 이름을 걸고 콘텐츠를 올리는 일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철저히 익명으로 운영했다. 직장 밖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일이 발칙한 일로 여겨지는 면도 있었기 때문에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그렇게 했다.
단톡방은 생각보다 굉장히 천천히 커나갔다. 예전에는 커뮤니티를 만들 때 억지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초대해오고는 했는데, 이 단톡방은 괜히 숨겨놓고 나만 보고 싶었다. 좋은 분들이 많이 와서 따뜻한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내게 힐링이 많이 되었다.
설문지를 뿌리고 오프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사람들이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톡방 설문지가 30여 분이 접속하는 라디오 방송이 되고, 뒤이어 몇 번의 작은 오프 모임들로 발전했다. 다들 이야기해주시더라. '내 주변에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어쩌면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용기 내어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 처음 알았다.
2단계: 웹사이트 없이 서비스 테스트
노션, oopy.io, 타입폼.
가설: "디지털노마드 정보에 대한 강연 수요가 있을 것이다."
작업 기간: 3주 (직장 다니면서).
결과: 회원가입 67명, 유료 결제 30명, 총매출 30만 원.
서비스를 론칭할 때 내가 항상 따르는 순서가 있다. 최소한의 기획을 통해 빠르게 컨셉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돈을 내는지 보는 것. 돈에만 집중하는 이유는 — 이전에 사업을 하면서 설문조사니, 회원가입이니, 페이지 팔로우니, 다양한 방법으로 수요를 측정해봤지만 아무것도 실제 매출과는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5000만 원 들여서 팝업스토어도 하고 인플루엔서 마케팅도 하고 인스타그램 페이지도 천 명대로 키웠는데, 정작 온라인 매출은 3달 동안 15만 원. 그런 경험이 한 번 있으면 — 확인의 유일한 수단은 결제뿐이라는 걸 뼈로 안다.
3단계: 베타 웹사이트
노코드 툴들로 실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코딩 없이 로그인, 데이터베이스, 결제, 인증까지 전부 구현했다. 석 달 걸렸다. 직장 다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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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회원가입 300명, 강의 결제 30명, 총 120만 원 수익.
4개 강의를 론칭했는데, 각각 20명, 3명, 3명, 0명. 극명한 차이. 20명이 신청한 강의에서도 끝까지 따라온 사람은 6명뿐이었다. 0명이 발생한 강의는 기획부터 커뮤니케이션까지 오래 준비했는데 —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는 게 문제였다.
안 되는 건 빠르게 접는다. 잘 되는 걸 더 잘하는 게 낫다. 이건 이후에 내가 만든 모든 프로젝트에서 반복된 원칙이다.
트래픽도 문제였다. 3달간 운영했는데, 내가 콘텐츠를 올릴 때 빼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서치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고, 리드를 만들어줄 콘텐츠가 부족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이야기의 결론은 '그래서 성공했다'가 아니다. 노마드인서울은 결국 접었다. 그 뒤로 네 개의 프로젝트가 더 실패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실패한 프로젝트들이 쌓이면서, 만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뭘 검증해야 하는지, 뭘 버려야 하는지, 뭘 먼저 만들어야 하는지 — 몸이 기억하기 시작했다. 머리보다 먼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기술」에서 적었듯이, 소유를 줄이면 본질이 보인다.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버리고 버리니까, 진짜 남는 것이 보였다. 그게 지금의 Soulin이고, KINS다.
투자 없이. 팀 없이. 여전히 혼자.
혼자 만드는 것은 외롭다. 유럽 시간으로 밤에 일하고, 낮에 커피 한 잔 하며 조금씩 만든다. 밀리고, 처진다. 하루 1개 기능 구현, 또는 콘텐츠 1개 제작. 그게 내 속도다. 빠르지 않다. 그렇지만 멈추지도 않는다.
「퇴사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에서 더 솔직하게 적었지만 — 결국 이 모든 건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가 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드는 중이다. 아직도.
당신이 만들고 싶은 건 뭔가요? 그리고 왜 아직 안 만들었나요?
Thread: The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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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치유, 그리고 혼자 만드는 삶에 대해 씁니다. 여정을 위한 도구 → souli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