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처음 적었을 때는 유럽에 온 지 2년 차였다. 비교할 것이 그래도 적었다. 지금은 6년 차. 그 격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어졌다. 더 복잡해졌다.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할 생각은 여전히 없다.
몸이 먼저 알았다. 베를린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 오후 5시가 되자 아무도 사무실에 없었다. 가슴이 불안해졌다. 한국에서 5시에 퇴근한다는 건 해고 사유에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 그게 그냥 보통이었다.
몸이 풀리는 데 석 달이 걸렸다. 5시에 나가도 괜찮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어깨가 납득하는 데.
한국에서 '일'은 정체성이다. "뭐 하세요?"라는 질문은 사실상 "당신은 누구세요?"와 같은 질문이다. 답변은 직함과 회사 이름으로 구성된다. 일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일이다.
유럽에서 '일'은 — 일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 삶의 일부이지, 삶의 전부가 아닌 것. "뭐 하세요?" 대신 "요즘 뭐에 관심 있어요?"를 물어보는 사람이 더 많다.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한국의 구조 안에서는 — 일이 곧 사회적 위치이기 때문에, 일을 잃으면 사회적으로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백수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를 생각해보면 안다. 유럽에서 '직업이 없다'는 건 상태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 판결이다.
나는 한국에서 그 판결을 받았었다. 자퇴하고, 사업이 망하고, 프리랜서를 전전할 때 —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동정이 아니라 불편함이었다. 실패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불안해지니까. 전염될 것 같으니까.
유럽에서는 그 시선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 관심이 없었다. 좋은 의미에서. 네가 뭘 하든, 네 인생이니까. 그 무관심이 — 처음에는 섭섭했다가, 나중에는 해방이 되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기술」에서 적었듯이, 나는 소유를 줄이면서 자유를 배웠다. 직함도 소유의 일종이라는 걸, 유럽에 와서야 알았다. CEO, 팀장, 과장 — 한국에서는 이 타이틀들이 나를 증명해주었다. 유럽에서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버렸다. 그리고 버리고 나니 — 다시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유럽이 유토피아라는 건 아니다.
유럽의 '워라밸'이라는 것도 — 자세히 보면, 꽤 게으른 면이 있다. 5시에 퇴근하는 건 좋은데, 일의 강도나 효율은 한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경우가 많다. 관료주의는 한국의 몇 배다. 뭔가를 바꾸려면 한국에서 3일이면 되는 걸 여기서는 3달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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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럽의 자유는 — 자유만큼의 불안정성을 동반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혼자서 다 해야 한다. 그 '혼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천국이고,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 더 외로운 지옥이다.
6년을 살면서 내린 결론은 — 결론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맞는 사람이 있고, 유럽이 맞는 사람이 있다. 어디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 있고, 어디서든 적응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아마 — 어디에도 완전히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너무 자유롭고, 유럽에서는 너무 한국적이다.
「원격근무는 게으른 게 아니다」에서 쓰겠지만 — 나는 결국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에 있든, 내 방식으로 일할 수 있으면 — 거기가 나의 자리다.
당신에게 '일'은 뭔가요? 정체성인가요, 수단인가요,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인가요?
Thread: The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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